'노래하는 천사' 쌍둥이 듀엣 '수와진' 형 안상수 - 인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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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초대석] '노래하는 천사' 쌍둥이 듀엣 '수와진' 형 안상수

모르는 사람들 아끼고 사랑하며 … '파초'처럼 산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바람이 얼음처럼 차갑던 올초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는 조손가정을 찾아 이불을 전해주고 있었다. 

 "잠깐만요 기자님, 이것좀 드리고요."

승합차 뒷부분에서 두터운 이불을 꺼내며 그가 말했다. 이불보따리를 자원봉사자에게 건네준 그가 차 뒷문을 닫지 않고 머뭇거렸다. "……."

잠깐 생각에 잠긴 것 같던 그가 자원봉사자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음…, 많이 어렵다구요…, 이거 하나 더 갖다 주이소." 그가 10kg들이 쌀 한 포대를 꺼내더니 이불 위에 얹었다. 본래 이불 한 채만 주려고 했으나 누옥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것이었다.

 '파초', '새벽아침', '영원히 내게'로 잘 알려진 쌍둥이 듀엣가수 '수와진'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파초'의 가사처럼,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쌍둥이듀엣가수 수와진의 형 안상수씨를 다시 만난 건 지난 달 24일 오후. '수와진 사랑더하기' 사무실이 있는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에서였다. 

동생 안상진씨는 지난 89년 괴한들에게 피습을 당해 세 차례의 뇌수술을 받았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면서 간경변, 폐종양의 등의 병이 찾아왔고 현재는 치료를 하며 신학공부를 병행 중이라고 그가 말해줬다. 

지난 85년 명동성당에서 심장병 어린이, 불우이웃돕기 공연을 시작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수와진은 '버스킹공연'(길거리공연)의 원조이다. 그런 수와진이 어떻게 인천까지 오게 됐을까.

 "인천에 온 지는 한 7년 정도 됐어요. 그 전까지 분당에 살았는데 계양구 '쉘브르의 우산'이란 음악카페에서 노래를 했거든요. 왔다갔다 하기 힘들어 아예 인천에 정착했지요."

명동성당 공연처럼 수와진은 '돗자리콘서트'란 이름으로 인천 전역을 도는 중이다. 길거리공연이므로 특별한 입장료는 필요없다. 노래가 끝난 뒤 한 푼 두 푼, 사람들이 모금함에 넣는 돈이 관람료의 전부다. 그 후원금은 물론 그 지역에 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그러다보니 후원금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수와진 사랑더하기'란 법인을 세운 이유다.

법인이 세워진 때는 지난 2013년 11월. 이후 수와진은 인천을 거점 삼아 자신들을 찾는 곳만 있으면 전국 어디라도 달려간다. 


 
▲ 수와진 '사랑더하기' 회원들이 서구 가좌동에서 가정환경이 어려운 가정을 방문해 겨울이불과 쌀을 전달하고 있다.

수와진이 가수가 된 것은 자신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군에 있을 때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전문가의 눈에 띄었다.

 "제가 복무하던 군대가 원주에 있었어요. 어느 날 중앙문선단이 와서 공연을 하며 저와 동생 상진이가 부대 대표로 나가 노래를 불렀지요. 그 때 가수 전영록이 함께 왔는데, 영록이 형이 명함을 주며 제대하면 오라고 하더군요."

 '준프로덕션'이란 곳에 소속된 전영록은 수와진이 제대하고 찾아가자 반갑게 맞아줬다. 그렇게 연습생 시절을 시작한 수와진은 명동의 '영스타'란 통기타업소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당시 함께 프로덕션에 있던 김승덕씨가 수와진에게 제안을 한다.

 "'아베마리아'란 노래 아시죠? 그걸 부른 승덕이 형이 명동성당서 공연 있는데 함께 가자는 겁니다. 좋은 일좀 하자며 가 봤는데 창백한 얼굴을 한 아이들이 앉아 있더라구요."
심장병을 앓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데 3살 때 심장병으로 죽은 막내여동생이 생각나는 겁니다."

먼저 천국으로 간 여동생을 떠올린 수와진은 아이들을 향해 묻는다.

 "너희들 뭘 갖고 싶니?" 
 "곰인형요." 
 "왜?" 
 "곰은 늘 웃고 있잖아요…."

심장이 아픈 아이들은 웃을 수 없었으나 웃고 싶었다. 웃는 얼굴의 곰인형이 갖고 싶은 아이들…. 그래, 우리가 이 아이들 곰인형 하나 못 사주겠는가. 수와진은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곰인형을 사 주기로 결심한다. 병을 고쳐서 웃는 얼굴로 살아가게 해주겠노라고.

그렇게 듀엣으로 심장병 어린이, 불우이웃돕기 공연을 시작한 그들은 공중파 방송의 한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며 자연스럽게 가수로 데뷔한다. 

 '새벽아침'으로 데뷔한 1987년 수와진은 'KBS 가요대상 신인상'과 'MBC 아름다운 노래 대상'을 수상한다.
이후 '파초' 등을 발표하며 정상에 오르던 89년 동생 안상진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괴한들에게 피습을 당한 것이다.

 "그 때가 1월1일이었는데 한복 입고 나가니까 있어 보였나봐요. 뒤에서 누가 다가와서 공격을 한 거지요. 동생 말로는 여러명의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고 하는데 뒤에서 그랬으니 알 수가 없었죠. 얼굴이라도 봤으면 잡았겠죠." 

이후 방송활동을 중단한 수와진이 다시 공식무대에 선 건 95년이다. 동생의 쾌유를 기다리던 안상수씨는 더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영원히 내게'로 솔로 데뷔를 한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동생이 기적적으로 일어난다.

 "동생이 돌아와 2007년 듀엣으로 노래를 발표했어요. 그랬는데 또 폐종양으로 폐를 절개했어요. 오랜 병치레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이 약해지니까 또 다른 병에 걸린 거지요. 지금은 학교를 다니고 있고 건강은 굉장히 좋아졌어요. 그래서 내년이나 내후년 정도 다시…(듀엣을 할까 합니다.) 하하."

수와진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고1 때 돌아가셨어요. 저희 형제는 성악을 하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음악의 길을 접고 동생과 함께 경남상고에 진학했어요."

어렸을 때는 동생과 주먹다짐도 많이 했다.

 "쌍둥이는요. 정말 무지하게 싸워요. 체격도 성격도 똑같거든요. 그런데 또 없으면 못 살아요."
그렇게 '천사활동'만 하면 도대체 뭘 먹고 사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런 말 있잖아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는. 그 말이 정말 맞아요. 거리공연하고 있으면 누군가 전화번호를 적어가요. 그럼 나중에 전화가 와서 고생하시는데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거 밖에 없다고 행사에 초청을 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쪽 일에 더 신경쓰는 거죠. 묵고사는 문제는 전혀 어려움이 없어요. 하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거리에서 계속 공연을 할 것이라는 수와진의 안상수씨는 "요즘은 CMS통해 도와주는 분들 많아졌다"며 "올해는 6억~7억원, 내년에 10억원 정도로 자생하는 법인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경상도 싸나이'의 억양이 여전한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노래처럼 얘기했다.

 "저희 사랑나누기 법인을 인천에 본부가 있는 전국조직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인천이 사랑을 꽃피우는 도시가 되도록 말입니다." 


 /글 김진국·사진 양진수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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